<우리를 만들어낸 역사적 순간>
1789 1848 1871 1905 1917 1968 20??
세계적 혁명인가 자본의 재구성인가?
I. 자본주의 시대 노동계급에서 일어난 분산과 재편성
혁명적 노동계급에 의한 자본주의에 대한 최초의 전 세계적인 공습은 독일과 러시아를 중심
으로 1917-1921년에 일어났다. 그 공습은 궤멸되었고 역공이 그 뒤를 이었다. 그 공격은
과도기적으로 파시즘의 형태를 띠었고 좀 더 지속적으로는 사민주의적 복지 국가주의, 스탈
리니즘 그리고 제3세계 국가 발전의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그 진정한 내용과 성격에 대한
기억을 묻어 버릴 만큼 거의 성공적이었다.
1968-1977년은 혁명의 귀환과 최소한 부분적인 회복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여기서의 회
복은 자본주의 헤게모니의 더욱 심화된 발전 속에서의 회복, 초기 패배로 인해 부재 상태에
빠졌던 공산주의 설계의 회복을 의미한다. IN의 임무는 그 회복을 더욱 심화시키고 다음에
일어날 (마지막이길 바라는) 세계적인 공습을 위한 이론적 실질적 재편에 참여하는 것이다.
2008년 터져 나온 세계 위기(그 자체로 단지 “느린 추락 착륙“의 마지막 뒤틀림– 1970년
시작된 위기보다 때로 더 빠르고 때로는 더 느린)의 마지막 국면이라는 관점에서 성찰해 볼
때, 그리고 오늘날 간헐적으로 모양새를 취해가고 있는 노동계급의 그 위기에 대한 대응으
로부터 성찰해 볼 때, 우리는 1970년대 후반 이래로 전 세계에 퍼져있는 대부분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삶의 비틀거리는 진부함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일
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 단지 사민주의적 복지국가의 폐기, 소비
에트 블럭의 붕괴와 독일 재통합,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구역으로 부상한 아시아 혹
은 급진적 이슬람의 출현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대 초기 대
중 투쟁을 겪으며 살았던 우리에게, 2008년 10월의 붕괴에 앞선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35
년간의 하강은 확실히 1840년대 공산주의 운동이 처음 출현했던 이후 가장 길고도 낯선 역
사적 시기들 중 하나인 것 같다. 우리들 가운데 거리에서 펼쳐진, 선진 자본주의의 심장부
에서 벌어진 반복된 대중운동의 시기를, 너무 어려서 경험하지 못 했던 사람들은 지배적 이
데올로기에 의해 “Washington Consensus,” 신자유주의, 국제화, “근대 후기” 혹은 “역사의
종말“로 잇따라 특징 지워진 한 시대의 비현실성을 이해하기 위해 훨씬 더 크게 상상의 나
래를 펼쳐야만 한다.
파리꼬뮨(1871)에서 1905년 러시아 혁명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 기간에 맞먹는 비례적인
투쟁의 퇴조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심지어 그 당시에도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조직적
노동계급 운동은 노동조합에서든 대중적 노동자 정당에서든 점진적으로 팽창했었고, 그 결
과 1900년까지 심지어 상당한 정도의 “수정주의“라는 사상적 난잡함을 양산하기도 했다.
그건 그 때고– 여전히 세계적 차원의 자본주의 상승 국면– 지금은 지금이다.
대조적으로, 1970년대 중반 이후는 거의 연속적인 패배의 기간이다 : 라틴아메리카 남부 원
뿔지역(칠레, 아르헨티나, 우르과이, 브라질)의 무자비한 독재;1980-81년 급증하는 폴란드
노동자 탄압과 포용, 인종차별정책에서 긴축정책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남아프리카
노동자 운동의 급진적 흐름에 대한 봉쇄, 이란 혁명 노동자위원회의 패배, 프랑스 제철의
감량 경영(1979)에서 이탈리아의 FIAT(1980)를 거쳐 영국 광산노동자 파업(1984-85)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심장부에서 일어난 구식 단일산업 투쟁의 연이은 패배.
미국은 노동조합 투쟁의 기나긴 연속적 실패를 목격했다 :
이 패배는 PATCO (1981)에서
Greyhound (1983) 로, Phelps-Dodge Copper (1984) 와 P-9 (1986)에서
Jay, Maine
paper 파업(1987-88)에 달했다. 이 국면의 끝에 Wal-Mart는 최대 고용주였던 General
Motors의 자리를 대체했다.
심지어 노동자들이 전통적인 형태를 벗어나 대항했을 때조차, 그들은 패배했다.
– 브라질 노동자들은 1970년대 후반 몇몇 인상적인 파업을 벌였지만 당시 룰
라와 노동당에 의해 유권자라는 속박에 갇히게 되었으며 결국 크게 축소되고
말았다 ; 철강과 자동차산업은 70년대 후반 가장 중요한 고용주였으나 10년
후 맥도널드와 보안업체가 그들을 대체했다.
– 만성적 실업에 시달리던 알제리 청년들이 1988년 폭동을 일으켰지만 이슬람
운동으로 견인되었고 그 이후의 시민전쟁으로 분쇄되고 말았다.
– 석유노동자들과 다른 노동자들이 이란혁명(1978-81) 동안 노동자위원회를
설립했으나 그 혁명을 진압하는 것이, shah(이란국왕의 존칭)의 전복을 강
탈한 이슬람공화국의 우선과제였다.
– 1987년 남한 노동계급이 분출해 90년대 초반까지 성과를 얻었으나 그 후
살라미전술(달갑지 않은 분자를 제거하는 정책)과 1997-98년 IMF위기의
쓰나미를 맞아 역공을 받았다.
– 남아프리카 민중은 인종차별정책의 철폐를 강제했으나 결국 ANC는 이들을
신자유주의에 넘겨버렸다.
– 2001-2002년 일어난 아르헨티나 piqueteros 운동은 정부를 굴복시켰으나
그 이상은 하지 않았고 페론주의(Juan Peron의 주의 또는 정책)의 재생으로
흩어지고 흡수되었다.
여기에 연속적으로 일어난 지역 전쟁을 더해보자. 레바논 (1975-1990)에서 1990년대 초기
까지 40개 남짓의 전쟁이 진행 중이었고, 1994-1998년에는 전쟁이 최고조에 달해 거의 아
프리카 전 대륙에서 4백만 명의 죽음을 몰고 왔으며, 미국은 이라크에서 큰 낭패를 보았고
아프가니스탄과 아마 파키스탄에서도 낭패를 볼 잠재성이
있다. 구유고슬라비아와 구소련
연방의 주변부에서 나타난 살인적 국가주의의 확산은 1차 세계대전의 종말을 강제한 프롤
레타리아 국제주의가 사실상 아주 먼 얘기인 듯 보이게 했다.
II. 유일한 실질적 전제인 전 세계적 임노동력
우리가 이토록 암울한 역행의 시기에 희망을 품고 등장한 만큼 우리는 1919년 살해되기 직
전
로자룩셈부르크가 했던 말을
상기해본다 : “혁명은 말한다 : 나는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공산주의가, 막스가 공산주의 선언에서 언급했다시피 ” 우리들 눈
앞에서 발전하고 있는 실질적 움직임“이 현실 속에서 진행 중이라고 단언한다. 헤겔의
“knights of history (역사의 기사)”에서처럼 ,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어떤 급박함 속에
두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다음번 공세의 분명한 칼날로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전제
에 두고 있다.
이 “전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 번째 접근으로서, 그것은 전통적인 “블루칼라” 프롤레
타리아(다소 축소되긴 했으나 여전히 중심에 있는)로 분산되어 있는 임노동 부대, 분산되고
임시화된 서브프롤레타리아 그리고 그 부대와 동맹이 가능한 기술 과학 지식 문화층의 프롤
레타리아 요소들을 “독자적 계급 – 세상을 접수할 준비가 되어 있고 세상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재조직하는“으로 통일할 수 있는 전 세계적인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이들은, “전도
된” 형태로,
사실상 막스가 “총노동자“(Gesamtarbeiter)라고 불렀던 것을 포함하는 부대이
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지난 40년간 빚으로 움직여온 사회적 후퇴
로 인해, 이 “총노동자“는 키메라(환상)인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 축적의 흩어
진 겉모습(“정체성 정책“으로 이론화되고 찬미된 바로 그 파편들) 하에 이들은 세상의 “사용
가치” 일을 매일 하고 있다. 이들 노동력은 현재 야만과 지구파괴를 향해 더욱 광적으로 달
려가고 있는 자본축적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주장하는 강령의 재통합은 “유토피아
“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 시대의 실질적 유토피아인 인도적 형태와는
관계가 적은 이 낡은 사회 체제의 존속이야말로 유토피아적이다.
우리 IN이 헌신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노동력의 강령적이고 실질적인 재통합이다.
III. 역사적으로 지배적 세력인 노동계급의 분산과 재편성
앞서 서술한 명백히 빽빽한 문체가 어떤 이들에게는 불분명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
부터 차례로 그 보따리를 풀어보겠다.
1968-1977년 세계적 차원에서 일어난 프롤레타리아 마지막 총 공세의 특징은 공장조립라
인에 저항한 반란이라는 점이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움직임은 “대안적 사회 과
제“를 명료하게 하고 이행하는 데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들은 어떤 이들에겐 비교
적 명료해보였다. 앞 선 위대한 혁명(러시아 1917년, 독일 1918, 스페인 1936, 헝가리
1956)의 노동자위원회 그리고 다른 형태의 민중회의 혹은 덜 총체적인 민중투쟁 현상
(1974-75년 포르투갈 혹은 1950년대에서 1973년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 주도
의 파업운동)을 다시 고려해 볼 때, 그 운동의 목표는 기존의 산업공장을 접수해 “노동자
통제” 하에 두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1945년 이후 자본주의 “성장“이 이미 빗나간 특성을
보였던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단지 자동차의 산업연계성이 지니는 부정적인 사회적 영향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 그러한 시각은 이미 결함이 있었지만 최소한 많은 노동자들에게 명
백한 듯 보였고 당시 가장 진보적 투쟁(유럽과 북미에서 일반화된 파업투쟁)을 위한 중심을
제공했다는 공로를 지니고 있었다.
“국제 노동자위원회에 있던 모든 권력“은 그 시대에는 겉보기에 가장 “보편적인 실재“였다.
그리고 그 권력의 실현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였던 덧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자본가들의 역공은 “일반화된 자가 경영“을 향한
“눈에 보이는”
차원의 움직임에 대한 직
접적인 공격을 수반했다 : 대공장을 소규모 산업으로 해체해 시골 “초원“에 고립시켰고 더
나아가 노동자들을 탈도시화하기 위해 외곽지역으로 분산시키고, 노동을 임시직으로 바꾸
고, 제 3세계에서 외주 제작을 하고, 생산에 강화된 “하이테크” 를 도입했다. 1968-1977년
반란을 일으킨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이런 방식의 탈사회화는 깊고 철저했다. 이 방식은 자
본가들 역시 이용할 수밖에 없는 기술(이런 경우 무엇보다도 새로운 텔레코뮤니케이션과 향
상된 운송수단)분야에서 교과서적으로 사용되었다 ; 자동차 대량생산 이후 뿐 아니라, 혁신
은 프롤레타리아라는 보편적 계급을 고립시키고 분산시키는 발단이 된다. 우리가 그러한 텔
레코뮤니케이션과 운송수단이 내일엔 우리의 실질적인 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이는 후에 살펴 볼 것이다.
우리의 신중한 낙관론은 단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강화된다. 앞 선 수십 년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부르주와 자본주의 사회를 철폐하려던 움직임의 패배–부활 싸이클은 새로울
것이 없다. 노동운동은 패배로부터 배우고 재구성하며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속박에 대응
해 오기를 반복해왔다. Enrages와 프랑스 혁명의 Babouvist Conspiracy of Equals에서
1848년까지, 바로 그 초기의 움직임은 음모적 반란주의(putschism-Blanqui)와
1848년 파
리 6월 공산주의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이고 보강된 표현 속에 등장한 다양한 유토피아적
계획(Owen, Fourier)을 버려야만 했다. 그 1840년대의 고조(upsurge)로부터, 막스 엥겔스
의 작업과 실질적인 활동 속 운동에 성숙한 자의식이 도출되었다. 1848년대의 패배를 따른
긴 붐이 다양한 경향을 지닌 제1차 인터네셔널을 양산하고 파리꼬뮨에서 절정에 이른, 미국
노동해방에서 유럽파업의 물결로 이어지는, 1860년대 투쟁의 상승을 낳았다.
꼬뮨이 붕괴하고 1차 인터네셔널이 해산되자 자본주의 발전의 칼날과 성숙한 노동자 운동
은 독일로 방향을 바꾸었다. 사민주의적 개혁주의(노동조합과 국회활동)의 기나긴 환영이,
막스의 실질적 운동에 관한 이론을 후진국의 산업적 발전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순화시키려
는 움직임과 함께, 독일을 시작으로 러시아에서 더욱 치명적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소위 “사
민주의의 세기“와 사민주의의 사생아인 스탈린주의(1875-1975) 즉 국가사회주의의 치명적
환영은 시작되었다. 막스와 엥겔스는 초기부터 “사민주의“라는 용어를 그들이 이해하고 있
는 공산주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절충적 잡동사니라고 비난했었다(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 private correspondence). 그러나 2차 인터네셔널(1889-1914)의 특징이
되 버린 잿빛 탁월함은, 서구유럽의 겉으로만 가혹해 보이는 선거를 통한 진보와 노동조합
진보 하에 막스 엥겔스의 이러한 비평을 조용히 뭍어버렸다. 사회주의/공산주의가 국영재산
을 계획하는 국가를 뜻한다는 그릇된 사고가, 세상을 이전의/확장된 자본의 지배에서 실질
적/강화된 자본의 지배로 변이시키려는 현실(1870s-1940s)을 은폐했다. 이러한 변이는 이
미 막스의 또 다른 미지의 작품 (1932년까지), 일명 출판되지 않은 자본론 제1권 6장 속에
완벽하게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존의 조건을 폐지하는 현실 운동” 이 1905-1906년 러시아–폴란드 대중투쟁 속에 나타
난 자기만족적 지루한 사민주의의 세계를 찢어버렸다. 빠리꼬뮨이 국가 폐지를 위한 실질적
인 암중모색하던 것과 때를 같이 해, 1905년에 터져 나온 투쟁은 2차 인터네셔널의 국회점
진주의, 노동조합주의와 생산계획주의에 대항해 노동계급의 훨씬 더 진보된 형태로 소비에
트와 노동자위원회를 역사적 의제로 자리매김했다. 소비에트와 노동자위원회는 그 결과
1917-1921년 세계 반란의 파도 가운데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독일과 러시아를 주축으
로 시작된 당시의 반란은 결과적으로 30개국에 전파되었다가 패퇴된다. 1905-1921년 사이
의 여파로
Luxemburg, Bordiga, Gorter and Pannekoek과 같은 차세대 혁명이론가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당시 활동 중이던 노동계급의 실질적인 발견에 대한 자각적 표현이었
다.
1917-1921년 혁명의 물결은 그러나 “사민주의의 세기“와 생산주의의 하향식 계획입안 방
식을 끝낼 수 있을 정도로 깊이가 있지는 못 했다 ; 오히려 후자를 자본주의의 안정화에 더
욱 적합하도록 만들었다.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의 새로운 시신 더미를 넘어, 이전까지 알려
져 있지 않았거나 어렴풋이 윤곽만 드러냈었던 국가주의, 불황이 10년과 처음으로 “재구성
(1914년 이전 시기의 실질적 개혁주의와는 대조적으로)”을 이룬 2차 세계대전을 통해 그
균형을 회복했다; 이 재구성은 1914년 세계적인 차원에서 이미 상품생산을 폐지하는 데 필
수적인 전 지구적인 생산력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이 재구성의 일부
에 반식민지 상태이거나 새롭게 의존적이게 된 과거 식민지 사회에서의 강화된 자본축적이
포함되는데 이 시기에 프랑스 제국뿐만 아니라 패권국 대영제국 또한 미국에 그 패권을 넘
겨주게 되었다.
IV. 자본주의 쇠퇴 동안 벌어진 재구성과 반란
2차 세계대전 후 오랜 팽창은, 자칭 진보적이라는 겉치장을 한 다양한 국가주의의 후원 하
에, “공산주의 유령“을 광범위하게 ?아낸 듯 보였는데 이는 특히 세계 1/3 인구를 통치하던
전체주의 국가들이 공산주의의 장식들 뿐 아니라 단어 자체를 접수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생
산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그러나 달리 인식하고 있었고 양진영 모두에서 새로운 형태의 투
쟁을 재조직하고 새로운 투쟁 방식을 발견했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1950년대 이후 미
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탄력을 받으며 성장한 불법파업이었다. 1956
년 폴란드 노동자들이 스탈린주의 국가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감행하게 했고 몇 달
후 헝가
리에서는 눈에 보이는 레닌주의 전위당이 없는 상태에서 프롤레타리아들이 며칠 만에 국가
적 체계를 갖춘 노동자위원회를 구성해 정권을 전복시켰다. 1968년 프랑스에서 노동자들은
역사상 가장 긴 총파업을 단행했다. 1950년대 이후 노동자 운동 가운데 이 파업의 순간은
1970년까지 많은 장소에서 법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을지 몰라도 사실상 생산현장에
대한 통제를 자본가들로부터 빼앗았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자본주의를 뛰어 넘는사회적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정교화해내는 정도까지 나아가지 않았고 1970년대 중반까지 힘을
모으기 시작한 자본가들의 역공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 역공은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프랑스의 미테랑 그리고 중국의 덩샤오핑 등의 연이은 승리에 의해 강화되었고 1985년 러
시아의 고르바초프가 이에 가세했다. 1914년 이전 시대 이래로 어떤 이데올로기도 그처럼
전 세계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어 1) 1920년대 이래로
가장 큰 빈부의 격차 2) 앞 선 국가
주의 시대 대부분의 사회적 안전장치의 파편화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3) 새로운 원거리통신
과 운송 기술을 사용해 서구에서 불법투쟁을 가능하게 했던 노동자들의 집중을 분해하고자
세계적으로 생산을 분산시켰던 적이 없다.
1914년 이래로 모든 역사는 자본주의의 사회적 관계가 노후했다는 현실을 연장하기 위한
연이은 ( 그리고 지금까지 성공적인) 시도들을 수반해왔다. 이는 주기적으로 파괴 억제 그
리고 이데올로기를 통해 이루어졌고 노동자들과 그들의 투쟁을 그러한 자본의 사회관계에
복속시켜왔는데, 사회적 인적 비용이 얼마나 들든 상관없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815-1914년과는 대조적인 이러한 자본의 회복은 재구성을 수반했는
데, 이는 자본의 지배를 받지 않던 이전 세기에는 알려지지 않은 방식이었던 노동자와 공장
의 대량 파괴를 통해 자본을 회복했던 것과 똑 같은 방식에서 이루어졌다. 자본론에서 막스
가 분석했던 10년 주기의 위기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단순한 붕괴, 디플레이션 그리고 “자
동” 회복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았다. 재구성은, 1914년 이전 실행되었던 것과 같은 실질적
인 개혁주의와는 대조적으로, ” 전체적인 조직 개편” 포괄적인상황 하에서 사회적 총 임금
비용을 낮추는 것을 의미 한다 : 포괄적인 상황에는 노동계급을 훈육하는 노동조합과 사회
주의자 정당, 노동자– 관리자 협력방안 혹은 현재에 더 가깝게는 다양한 상담가들, NGO,
여성 CEO 그리고 녹색 자본주의가 포함된다.
새로운 후기 1914년 기간( “데카당스–쇠퇴” “제국주의의 쇠퇴 시기” “자본의 실질적 통치”
라 불리기도 하는)의 특징은, 이전 시기와는 대조적으로, 자본이 팽창하고 사회적 재생산이
수축한다는 점이다. 전후 붐(1945-1970)과 같은 회복은 그러한 재구성을 수반했는데 이 재
구성을 가능케 한 것은 초기 대량 파괴( 두 번의 세계대전, 불황의 10년, 파시즘 그리고 스
탈리니즘), 세계 체계의 재편성(영구 프랑스 제국의 종말, 마샬 플랜 하에 이루어진 세계 경
제 – 소비에트 블럭과 중국을 뺀– 의 “달러 블럭“으로의 변환, IMF and World Bank, 그리
고 이전에 대체된 국가시장에 의해 억제되어왔던 20-30대의 신기술(주로 자동차나 가전제
품과 같은 내구성 소비재)에 근거한 새로운 “가치 기준“의 강제 등이다. 이러한 재구성은 경
미한 1966년 경기후퇴 (일본, 독일, 미국), 1968년 달러 위기와 브레튼우드 체계의 재정적
붕괴(1971-73)와 함께 동력을 다 소모해버렸다.
문제들이 풀려나가던 후기를 전후로 수십
년간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이 벌어진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V. 자본, 파괴를 통한 새로운 균형을 구하다, 1970-현재까지: 느린 동체 착륙
그 때 이후, 자본은 새로운 “가치 기준“에 기반을 둔 또 다른 성공적인 재구성을 모색해왔
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그것이 사회적인 재생산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지 말이다. 그러한
결과들은 충분히 파괴적이었고 그들은 결코 완주하지 못 했다.
40년간, 지적한 바와 같이, 자본은 팽창하고 사회적 재생산은 세계적으로 축소한다.
연대기를 좀 더 가까이서 살펴보자.
1970-73년은 “느린 동체 착륙“이 시작된 시기이고 이는
Penn 중앙철도의 부도, 미국 경
기후퇴, 자신이 케인스학파라는 닉슨의 뒤늦은 발견과 고정환율제인 브레튼우드 체제에 대
한 1971년 8월 그의 일방적인 해체 결정에 의해 알려졌다. 무엇보다도 피라미드처럼 쌓여
가는 부채를 통해, 자본은 주로 북아메리카, 서부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정상“인 상태를 유지
해왔다 : 73-75, 80-82, 90-91, 2001-2년의 “정상적” 경기후퇴와 2007년에 시작된 현재
의 경기후퇴. 그러나 사회적 재생산 측면에서 볼 때, 1960년대 후기 자본의 역사는
1914-1945년 획득한 재구성을 다시 한 번 노린 3차 세계대전의 대역에 맞먹는다. 중요한
것만 간추려보면, 미국의 경우 실질적 생활수준이 20-30% 하락했다는 점, 일인 소득 가정
이 맞벌이나 삼인 소득 가정으로 대체되었다는 점, 전 지역에서 탈산업화가 이루어진 점을
들 수 있다 ; 서유럽의 경우 전반적으로 실업률이 평균 8-10%에 달했고 일반적인(아직은
미완의) 사회 복지가 제거되었다;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여피족의 주거지를 둘러 싼 노동자
들에 대한 판매 퇴조는 천연자원에 대한 토지임차에 기초한 것(러시아에서)이지 실질적인
생산과는 어떤 관련도 없고, 동유럽의 경우 서구 투기자본이 부동산에 유입된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비산유국, 구소련 중앙아시아국가, 인도
그리고 non-Tiger 아시아를 고려해볼 때, 우리는 질병과 전반적 빈민생활로 성장을 멈추고
죽어 간 수십억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당대의 멕시코는 “차세대 한국“(월스트리트저널,
약 1990년)에서 차세대 아프가니스탄(파이낸셜타임즈, 2010 3월)이 될 가능성이 있는 나라
가 되었다.
중국 연안으로 확대된 동아시아만이 현재 부분적인 예외로 두드러지고, 심지어 그들 중 한
국 대만 인도네시아조차 1997-98년 끔찍한 경기후퇴를 경험했으며 중국의 1978년 후기
성장은 그 결과물로 약 8억5천만 명의 농부를 남겼고 부유하던 실업부대 1억명이 붐때문에
떠나갔다.
유사하게 칭송되고 있는 “빛나는 인도“는 큰 규모의 농촌빈곤, 파산한 직조공들의 유행성
자살, 델리의 산업지역 내 노동 분규, 1970년대 대규모 경기후퇴를 따라 거의 소멸했다고
발표된 마오주의 낙살라이트(인도에서 토지 개혁을 주장하는 집단의 일원) 게릴라운동의 부
활에 의해 그 실상이 노출되어왔다.
“부상하는 거인” 중국과 인도에서 이미 소수의 현상이 되어버린, 아시아의 성장은 세계적
인 경기후퇴로 인해 상쇄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 버렸다.
그러나 누구도 지난 35년간 임노동 프롤레타리아의 변화된 조건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없이 1917-1921년이나 1968-1977년에 견줄 만한 그리고 그를 뛰어 넘는 자본주의에 대
한 전 세계적인 새로운 공습을 생각할 수는 없다. 현재의 노동환경은 1968년 디트로이트나
영국 레이랜드 혹은 Renault-Billancourt (파리)의 조립라인 노동자들과 다르며 후자는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도 달랐기 때문이다.
VI. 프롤레타리아 집중에 대한 자본의 공격
막스는 자본론1권 “기계와 근대 산업” 편에서 아름다운 문장들로 기술의 역사는
노동시간
의 길이와 조건을 둘러 싼 자본과 노동의 끝없는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쓰여 질 수 있다고
지적했으며 우리는 또한 자본이 1970년대 후반 이래로 60-70년대 노동자 반란에 대한 역
공으로 행해온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 문제들 중 하나는 세계 임노동 조건을 통일
하기 위한 새로운 보편적 전제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는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소비에트
와 노동자위원회를 실질적으로 발견해냈던 것 그리고 1968년 후 10년 간 이를 다시 “회복”
했던 것과 유사하다. 또 하나는 오늘날 세계 생산과 재생산에 나타나는, Grundrisse에서 막
스가 묘사했던 것을 시사하는 “역전된” 형태를 “내재적으로” 찾아내는 것이다 :
… 부의 일반적 형태를 향한 자본의 끊임없는 노력은 노동이 지닌 자연적인 한계를 넘어서
도록 몰아가고, 소비에서 만큼이나 생산에서도 전천후인 부유한 개체를 위한 물질적 요소를
창조하며 또한 그로 인해 그들의 노동은 더 이상 노동이 아닌 활동성 그 자체의 완전한 발
전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활동 그 자체의 완전한 발전을” 향한 1968-1977년 수색 가운데 미완의 출현으로
놀란 자본은, 축적을 위한 이전 조건이 붕괴되자 세계 노동계급에 대한 엄청난 규모의 2차
재구성으로 맞대응했다. 이를 위해 미국과 유럽의 밀집 도시지역에 있었던 대공장과 고도로
집중되어 있던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해체되고 분산되었다. 2차 재구성은 통신과 운송에 나
타난 신기술과 혁신을 통해 생산을 강화했다. 자본의 투쟁은 과거 그래왔듯이 인적 노동을
가능한 많이 생산으로부터 제거하는 반면 생산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미 이룬 높은 수준의 생산성을 고려해 볼 때, 그것은 물질적 재생산에 필수
적인 인적 노동이 세계적으로 이미 총인구 대비 “과잉” 상태였고 그러나 지배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본의 가치 확대를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필수적이라는 현실에 반하는, 한결
같은 당혹스런 자본의 투쟁이었다. 미국 감옥 체제 속에 있는 7백만 명( 재판을 기다리거나
감옥에 있거나 가석방 상태인, 총 3억 인구의 2%)만 보아도 자본이 과잉 인구를 창고에 보
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 3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20억 인구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하이테크” “신경제” 열광을 따른 그러한 기술은, 설사 기
존의 기술이 분명 자본주의의 사회적 관계의 물질화라 할지라도 자본은 아니라는 것을, 오
늘날 훨씬 더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
VII. 1848년 공산주의 분출 그리고 그 이후, 자본 자신을 폐지하려는 유령에 저항한 자본의 투쟁
유럽 노동계급의 실질적인 운동인 공산주의가 1848년 나타나자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과
거 모든 계급 형성과는 대조적으로, 사회가 할 수 있는 것들, 즉 임노동, 상품 생산, 자본의
폐지 그리고 이와 함께 임노동 프롤레타리아를 시작으로 한 사회적 계급의 폐지를 점점 더
신비화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종국에 자본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계급적 정치 경제, 합리적
문명에 대한 신봉 그리고 “제 3 계급(평민)”의 권리에 대한 추종을 모두 버렸다. 이제 제 4
계급 프롤레타리아와 대치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셰익스피어에서 고야를 거쳐 발작에 이
르는 창조적인 사회현실주의 작가들을 버렸고, 자신의 해방을 위한 무기 즉 자신의 위대한
철학 G.W.F. 헤겔의 유산이 1840년대 급진적 동요 속으로 양도되어 칼 막스로 이끌어지면
서 바로 그 무기가 자신을 향했음을 보며 두려움에 움츠렸다. 자본은 Tudor(튜더 왕족
1485~1603) 영국에서 프랑스 혁명을 거쳐 1840년대 다양한 국가(예를 들면 스페인)들에
서 공격적으로 수도원을 폐쇄하고 막대한 교회 토지를 징발한 반면, 자본주의 이념가들은
종교 부흥과 새로운 비합리주의와 바람을 피우는 식으로 “공산주의 유령“에 대응했다 (과거
30년의 종교 부흥과 새로운 비합리주의에 비하면 사실상 부드러운 편이긴 하다).
그러한 속임수와 진정한 인간성의 실현을 자본주의적 관계로 강제로 되돌리려는 광적인 이
데올로기적 전도는 이미 1945-1970년 전후 붐 동안 막대한 부분을 성취했으며 아마도 미
학, 이론, “하이 근대주의(지적, 예술적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와 유사한 뜻을 나타내는 근대
주의의 종국을 나타내기 위한 신조어)” 등에 가장 구체화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동서남
북을 막론한 “문명화된 계획자“의 시대였다. 이는 Robert Moses의 뉴욕으로, 구소련의 “과
학 도시“로 ,외국의 흰 코끼리 원조로 추진된 거대하고 거의 사용되지 않은 제철공장과
Nasser( 1950-70년 이집트 대통령) and Nehru(1947-64년 인도 수상) 정권 하의 제3세계
발전 어디에도 닿지 않는 고속도로 건설로, 혹은 브라질리아를 기술자가 지배하는 도시(파
리 교외에 있는 그의 유사하게 섬뜩한 프랑스 공산당 본부 같은)로 만들고자 했던 Oskar
Niemeyer(오스카 니마이어, 브라질 건축가)의 꿈에 대한 섬뜩한 침묵으로 나타났다. 자본은
1차 세계대전 직후 망각의 고비로부터 회복했고, 세계적인 자본축적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1945년까지의 기나긴 수십 년의 위기를 사회적 계획 입안 전문가들의 가짜 이성으로 극복
했다 : 영국 노동당의 얼굴 없는 잿빛 관료주의자들과 복지 상태, 프랑스 “trente
glorieuses(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의 30년을 일컫는 말로 영광의 30년이라고도 함)”
에서 보여 지는 교만한 기술자 지배 사상의 추종자들(테크노크래트), 소비에트 5개년 계획
과 “굴라시 공산주의(소비 물자를 증산해 생활수준을 향상 시키려는 정책을 강조)”의 유망
함을 내세운 스탈린주의 관료주의자들, “지적 방위체제“와 Robert McNamaras(오늘날 정책
분석이라 알려진 분석체계 제도를 담당했던 케네디 대통령 시절 8대 국무장관이자 세계은
행 총재를 역임한 인물)의 미국 군대 세계 확산 등이 이에 해당된다. 논리적 뇌사상태인 긍
정적 철학에서 시작해 신고전 “경제학“에서 펼쳐진 수학적 맹공격을 거쳐 근대 문학, 예술,
건축 그리고 음악에 대한 내핍을 주장한 인색한 형식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가짜 이성이 승
리한 시대였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 후 수년 간 근대주의의 어떤 흐름을 생기 있게 하거나
그렇게 한다고 여겨지는 급진적인 사회적 관점을 조심스럽게 지워갔다. 이러한 축하 분위기
속에서 단지 소수만이, 1848년 이래로, 유일한 실제 이성은 혁명적인 노동계급의 자각적인
세계 실천뿐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1950년 이후 불법 파업 운동을 통해 재
조직을 시작한 동안,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계속해서 생산 기술 주도적 근대주의의 밝은 미
래를 떠벌렸으며 이는 1968년 파리의 한 서정 시인이 벽에 쓴 것처럼 “포장용 자갈돌 밑으
로” 숨겨진 “해변가“의 잠재력이 숨어 있는 훌륭한 진지였다.
그러면 1968-1977년 노동자 반란을 가까스로 억누른 후 자본주의가 노후했다는 사실을 모
호하게 해야만 했던 자본의 임무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까? 1848년 이래로, 그러나 특히
1917년 이래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모든 문구는 패퇴된 혁명적 파도로부터 빌린 파편들
로 스스로를
치장해야만 했다. 루이스 나폴레옹이 노동자 조직을 조장했고 심지어는 1차
인터네셔널의 초기 회의에 프랑스대표단을 파견했던 사실을 떠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내전
파시즘은 자신이 부순 노동자 운동의 의복과 대중 선전 방법을 빌리는 데 달인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30년의 특징은 그러므로 복지 국가주의, 스탈린주의에서든 혹은 제 3 세계 발
전이라는 외관을 띄고 있든 1875년 막스가 비판한 바 있는 사민주의 고타강령의 실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70년 대 후반 이래로 자본주의 역공은 우리에게 가장 근접한 공격이므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모든 사회적 문화적 현상, 즉 교외와 준교외로의 도시해
체, 쇼핑몰과 “주변도시“의 확산, 전후 붐 동안 중산계급에게 버림받았던 도심지역의 “재정
복(도심지역은 세계적으로 고급화시키고 빈곤층은 저급한 도시외곽지역으로 몰아내는 형식
으로, 공공연하게 단결하여 “교육“을 접수하는 방식으로)”에서부터, 훨씬 강력해진 사유화와
개별적 기술에 의한 사람들의 원자화 그리고 그들이 “의사소통“하는 광대한 잡학의 바다에
이르는 모든 현상들은 반드시, 지금 현재는 역전된 상태에 있는 잠재적 인재 공동체라는 관
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후기 근대” 현상은, 북아메리카 유럽 그리고 동아
시아에서 “성장“으로 떠벌려지고 있으나, 마이크 데이비스의 문구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세계적으로 “빈민 행성“과 공존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난 30년에 대해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은 자본이 스스로 1960년대의 패배되고 편입된
공허한 이데올로기의 많은 부분을 어떻게 차용 했는가 이다. 소외된 중산계급의 저항이 축
적의 다음 단계를 개척하도록 도왔던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30년대, 신생 복지 국가의 공
무원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 바로 정확하게 이 계급이었다. 1970년대 후반 후, “선진” 자본
주의 부문의 부유한 계급을 위한 개인용 컴퓨터가, 이전 시기 자동차가 그랬던 것처럼 이러
한 축적 국면의 상징이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는, 자동차가 그랬듯이,
기술 그 이상이며, 자유라는 일반적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그 이데올로
기는 “거대함” “관료정치” “계급제“에 대한 저항이자 “조직 인간“과 “재빛 프란넬 정장“에
맞선 “혁명“이었으며 한 때 60년대 신좌파들의 교전 중 외침이었다. 이전 운동이 정치적으
로든
보헤미안/반문화적 형태에서든, 당시 지배적이던 “청교도주의“에 대해 쾌락적 소비를
대치시켰다면, 이제 자본가 계급과 그 추종자들은 월스트리트와 런던의 여피족을 선두로 합
성마약과 구르메(식도락가) 식당 그리고 최신유행 사도마조히즘(가학피학증)으로 뛰어들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고 공허한 사회적 이론가들(예를 들면 리차드 플로리다)에게 끌려 들
어간 “창의적 계급“은 물론 “신경제“와 “정보 초고속도로“에 치어 죽은 맞벌이 혹은 3인 노
동 가정에 닥친
어느 때보다도 늘어난 노동 시간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었다. 그리고 ”
창조적 계급“과 다른 많은 이들에게, 휴대전화와 블랙베리(캐나다에서 만든 스마트폰)는 노
동과 여가 사이의 적대관계를 제거했다. 막스가 말한 모든 방면에서의 활동을 통해서가 아
니라 하루 24시간 일주일 동안 일을 함으로써 말이다.
저항이 좌절된 준전체주의자들의 편입은 삶의 모든 방면에 이르렀다. 예전엔 창고 거리였던
곳에, 1930년대 식량배급을 기다리며 늘어선 노동자들의 사진으로 실내를 장식한 세련된
뉴욕 식당이 들어섰고 Barnes and Noble(2009년10월 당시 50개 주에 777개의 서점을 보
유한 미국에서 가장 큰 도서공급회사로 대부분의 매장에 스타벅스 커피가 입점해 있다)은
독특한 카페나 독립적 서점들을 제거해버렸다. 서비스 인원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대형
쇼핑몰이 등장해, 사람들은 상품으로 그득한 굴 속 같은 통로에서 제품들에 대해 지식을 갖
추도록 방치되었다 ; 가능한 모든 업체와 국가기관이, 아무 관계없는 선택사양을 나열하고
지루한 기다림을 강요하는 끝없이 뻗어 있는 전화들로 접수계 직원들을 대체해 버렸으며,
동시에 그들이 겉으로는 “섬긴다“고 외치는 이들에게 무급 노동시간을 강요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했다 ; 블루스 앤 재즈에서 한 때 전복을 외치던 책들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모든 “저항
” 문화는 Borders(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서회사)의 식탁에 제공되었다. “정보“라는 이름
의 지나치게 극대화된 과장 선전 속에서 ( 마치 헤겔의 정신현상학이나 막스의 자본론 같은
책들이 탐 피터스의 가장 최근에 나온 경영메뉴얼과 나란히 “정보“를 구성하고 있다는 듯
이), 도서관들은 수백만 권의 책들을 잘게 찢어 축소시키고 전산화시켜버렸다.
항상 책과
심각한 사고를 싫어했던 교만한 실리콘벨리 CEO들과 광고 담당자들은 새천년의 “종이 없
는” 경제를 떠벌렸다. 수백만의 “중간 관리직” (분명 어떤 사회적 중요성도 채우지 못 하는)
이 하이테크를 통해 규모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사라졌고 직업을 잃어버린 이들은 “신 경제”
를 노래하는 합창에 뒤 덮인 채 재활용된 주변부의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 대학들은 “자유
주의” 교육을 그들의 “고객들“을 위한 확대된 직업적 훈련으로 개조했고, 넝마가 된 과거
인간성의 잔재들을 “모든 것은 부패한다“는 후기 근대 해체주의자 룸펜인텔리겐치아
(Lumpenintelligentsia-지식층에 속하면서 실직한 사람)의 만트라(mantras-모토)에 넘겨주
었는데, 이들은 자신의(너무 실질적이라 논쟁의 여지가 없는) 부패를 바로 역사 속의 보편
적 해방 운동, 즉 IN이 영감을 얻은 혁명에 투영하는 데 있어 전문가들이다. 그러한 사상적
부패는 미국 사회 기반 시설 즉 하수도, 지하철, 거리와 포장도로, 다리, 뉴올리언즈 제방
혹은 아파트 건물과 같은 “구 경제“의 가속화된 부패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게 하는
데 유용했다. 아마도 이 전반적인 사상적 성형술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MBA(경영학 석
사)와 컴퓨터 괴짜와 투자은행가의 출현이었을 것이다. 이 인물들은 1960년대 풍토에서는
문화적 영웅들이나 “혁명론자들” 못지않게 광범위하게 욕을 먹고 비웃음을 받는 대상들이었
기 때문이다.
잊혀진 “딴 데 정신이 팔린 교수” 즉, 여전히 (어떤 경우) 과거 (그리고 지금
은 사라진) 인본주의의 기미를 풍기는 교수는 세련되고 적당히 햇볕에 그을리고 냉소적인 ”
급진적” 후기 근대 문학 이론가들에 의해 대체되었고, 이 이론가들은 재직권을 향한 개인적
인 정보망을 구축한 채 계속해서 이런저런 회의에 참석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노동자들을 위해 지어진 소박한 주택과 마을은, 1970년대 후
반 맞벌이 수입에 아이는 없는 여피 계층이 내부 도시를 다시 장악해가면서, 과거의 문화(
한 때 그들이 자신들의 거주지를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던 생기 넘치는 거리의 삶이었지만
이제는 그 솔직함마저 손상되어 버린 문화)를 일반적으로 “인용“하는 가운데 수리되었다(더
문제가 되는 것은, 1950년대 전형적인 미국 노동계급 가족이 수입의 15%를 주택에 썼다면
오늘날은 보통 전체 수입의 평균 50%를 쓴다는 사실이다). 이 새로운 분배는 또한 회상에
대한 거대한 전쟁을 수반했다. 이는 아우슈비츠를 테마공원으로 만들자는 제안에서 샌프란
시스코에서 1934년 일어난 총파업의 위대한 전투지를 쇼핑몰로 바꾸자는 제안에까지 이르
렀다. 1950년대 급진적 부두노동자들은 샌프란시스코 북부 해변이나 뉴욕 White Horse
Tavern( 1880년 문을 연 선술집으로 부두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했으나 1950-60년대에는
작가나 예술가들이 주로 이용하며 보헤미아 문학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이다)의 보헤미아 문학과 뒤섞여버렸다. 그러나 오늘날 컨테이너로 그득한 항구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는 과거 1/10에 불과해 여피족의 과거
발상지와 가장 가까운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멍한 노동자들의 유사성을 상상하기란 결코 쉽
지 않다.
자본주의가, 초기 축적을 통해, 항상 자본주의 이전 사회 구조의 전리품과 파괴에 부분적으
로 의지해 생존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시대의 부르주와 문화는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문화지층에 의지해왔었다(예를 들면, 유럽 귀족사회에 대한 모방 관계). 자본은 스스
로 투자한 만큼 건지지 못 하게 되면서, 1970년대 후반 이래로 사회적 재생산 토대를 스스
로 먹어치우는 동시에 후기 근대 니힐리스트와 해체주의자, 푸코(후기 구조주의자) , 에드워
드 사이드(서양에서 바라보는 동양주의를 비판한 ‘오리엔탈리즘‘으로 세계학자들에게 각인된
인물로 문학과 비평 등 문화 각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고 팔레스타인의 ‘돌아갈 권리‘를 주
장하기도 한 인물)와 자끄 데리다(프랑스 해체주의의 창시자)의 추종자들에 의해 퍼진 사상
적 에볼라 바이러스 속에 한 때는 해방적이었던 문화를 먹어치워버리는 끔찍한 삭제를 감행
했다. 막스가 오래 전 말했다시피 “매 시기를 지배하는 사상은 지배 계급의 사상이다.”
VIII. 계급 재편성과 그 적들: 세계 노동계급에 대항하기 위한 포르투알레그레(Porto
Alegre-브라질 남부 주도 이름, 행복한 항구라는 뜻으로 몇몇 NGO들이 발기인이 된 세계
포럼이 열린 장소), NGOs 그리고 사회적 세계 포럼(the World Social Forum)
이러한 문화적 공격은 다른 한 쪽에 반드시 정치적 공세를 병행해왔다. 막시즘을 거부하는
좌파들은 새로운 국면의 축적을 위해 자본의 형태를 재형성하는 데 거듭 필수적인 존재들이
었다. 푸루동과 그가 150년간 자본주의 틀 내에서 노동자 주도로 운영된 회사에 끼친 영향
력을 기억하기만 하면 된다. 혹은 현 시대에 더 가까운 것으로 사민주의, 스탈리니즘 그리
고 1945년 후기 케인스식 복지국가의 초석이 된, 노동계층의 지배를 주장한 레이버리즘(그
리고 심지어 초창기 그것을 위조한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떠올려보면 된다.
그러나 1950년대와 1960년대 많은 좌파들이 그들의 희망(서구에서 노동계급이 명백한 퇴
조를 보이던 기간 동안)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서 낭만화 된 게릴라 운
동으로 변경해 결국 그 결과에 크게 실망하고 무엇보다도 1960년대와 70년대 유럽과 미국
에서 벌어진 노동계급의 분출에 의해 역풍을 맞게 되었듯이, 1980년대와 90년대의 박력을
사회 운동으로 변환하고자 하는 태도가, 급진적으로 변형된 세계적 정황 속에서, 유사한 퇴
조기로부터 성장하고 있다. 세계 노동계급(그리고 단지 부차적으로 사회 운동)은 우리가 보
고 싶어 하는 21세기의 긍정적인 어떤 미래든 열어 줄 수 있는 열쇠를 지니고 있다. 최근
수십 년간 제3 세계 지역에 출현해 온 새롭게 형성된 노동계급은 당연히, 다음 번 노동계급
의 폭발은 마지막 폭발이 내전 기간 동안 나타났던 것과 같지 않았던 것처럼, 그 마지막 것
과도 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폭발이 없는 사회 운동은, 지금까지 라틴아메
리카에서 그랬듯이, 단지 새롭게 재건된 자본주의 국가의 부속물이 될 것이다. 아마도 차베
스의 베네수엘라나 심지어 룰라의 브라질이 그 실례가 되겠다.
만약 세계 자본주의가 현 위기로부터 빠져나와 실행가능한 축적의 틀을 재건해낸다면, 다수
의 새로운 사회 운동– 인종, 민족적 배경, 성, 선택적 성적 취향, 에너지 그리고 환경 문제
를 둘러싸고 형성된 정체성 정치학(개인의 주요한 관심과 협력 관계는 인종·민족·종교·성에
기초하여 만들어진다는 정치학), 계급이라는 내용에는 적대적인–이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
을 것이다. 사회적 세계 포럼과 그 보단 작은 규모의 회의들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불길은
주로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를 목표로 하고 있을 뿐 자본주의를 겨냥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세계적인 케인즈 학파 조지프 스티글리츠(Stiglitz-미국 경제학자), 삭스(Sachs), 죠지
소로스(Soros-20세기 최고의 펀드메니저로 꼽히는 인물), 폴 크루그먼(Krugman-국제무역
이론에서 기존의 비교우위론을 대신 신무역이론을 제시하였고, 1990년대 아시아 개발국의
금융위기를 예견하여 주목을 끈 미국 경제학자) 등, 이들의 전임자 케인즈가 그랬던 것처럼
노동계급과 그 잠재적인 동맹을 대가로 미래 자본주의 개편 재형성에 선도주자로 나선 이들
을 겨냥하고 있지도 않다. 사회적 세계 포럼 속에서 “세계적 정당성“을 지지하는 전형적인
인물들 중에는 스탈리니스트 피델 카스트로, 석유 페론주의자(대중 영합주의자) 휴고 차베
스, 혹은 전 크메르 루즈(1975-79년까지 캄보디아를 통치하고 대량 학살한 급진 공산주의
혁명 단체) 찬미자인 사미르 아민(이집트 출신의 경제학자, 전통적 사회과학·경제학의 서구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제3세계에 주축을 둔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재구축 주장) 등이 포함된
다. 그러한 “진보세력“의 한 옹호자는 최근 그리고 전형적으로 다음과 같이 썼다:
”…진보세력의 과제는 여전히 ‘수정주의적 개혁‘과 ‘반 수정주의‘ 의제를 내건 개혁 사이의
차이를 정립하는 것이다. 후자는 탈상품화를 압박하는 관대한 사회 정책과, 자본이 통제하
되 민주적으로 금융을 통제하고 궁극적으로는 생산 그 자체가 통제를 하도록 허용하는 내부
지향적인 산업적 전략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러한 강령 속에 “자본 통제“와 “민주적 금융 통제“가 들어 있다면, “탈상품화“가 얼
마만큼이나 실제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상품 생산은 자본과 금융 확장
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 운동이 라틴아메리카보다
더 두드러지거나 성공적인 곳도 없다. 새로운 대중
영합주의가 최근 몇 년 동안 상승국면에 있기 때문이다. 룰라는 이러한 경향에 있어 틀림없
는 선구자이다. 브라질 노동자당을 초기에 사회 운동으로 이끌었으며, 이제 그는 …실망스
러운 … (이미 예견됐었지만) 모습으로 브라질을 통치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피켓테로(피
켓 시위를 주된 정치 행위로 삼고 있는 정치 집단)는 2001년 12월 정부를 전복시켰으나 다
른 것으로 대체하는 데 (John Holloway-피켓테로에 영향력을 끼친 사회과학자이자 철학자
로 반 국제화 운동 등에 관여–의 주장에 속도를 맞추느라) 실패한 후 우익과 좌익으로 쪼개
졌다. 현재 우익은 고도로 정치화된 재조직 (그리고 대중 영합주의자들의) 정부를 위한 노
동 후생과 복지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있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대통령)는 새로운 합
법 정부를 위해 2003년 (국유 재산의 함축적 의미는 잠시 보류한 채) 천연 자원의 사유화
를 중지시킨 사회 운동의 추진력을 이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 가운데 오늘
날까지 가장 정교화 된 발전을 보이는 것은 휴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21세기 사회주의”
로, 국가 중심부에 주둔하고 있는 용병들과 쿠바의 조언자들로 완성되었다. 그는 석유로 거
둔 토지 대여 수익을 재원으로,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들 중 하나인 페루
(1968-1975)식 군사 모델을 새로운 형식으로 실현시키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국가 간섭주
의가 사회 운동을 기초로 재구축되고 있으며, 더 이상은 실용적이지 않은 과거의 권위적 국
가 간섭주의(예를 들면 아르헨티나의 페론, 브라질의 바르가스 같은 독재자)를 대체해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팡파레와 함께 나란히, 새로운 노동자 투쟁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출현해왔다.
2006년, 와하카(Oaxaca-멕시코 남부의 주) 봉기는 교사연합에 의해 시작돼 재빨리 도시
반란으로 전환되어 몇 개월 간 급진적 “의회주의자” 원리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또한 그 해
의 부정 선거 후 대중들이 몇 주 동안 멕시코 시티 번화가를 접수했던 것과 어느 정도 때를
같이 해, 대중들의 장악은 대선 패배 후 시달리던 로페즈 오브라도르의 중도좌파 민주혁명
당( left-bourgeois party – PRD)을 훌쩍 넘어 섰다. 에콰도르와 페루에서는 총파업이 일
어났다. 베네수엘라에서도 차베스에 대한 열광(베네수엘라 대중들 보다는 해외의 응원단장
들이 훨씬 더 차베스에 대해 열광하지만)과는 어울리지 않게 몇 건의 전형적인 파업이 일어
났다. 아르헨티나에서는 2001-2년 피켓테로(앞서 언급한 그들의 결점에도 불구하고)와 그
들이 이전부터 발전시켜 온 공장을 넘어선 창의적 투쟁 방법이, 잠깐이나마 대중 영합주의
자들의 국가를 실각시켰다. 그들이 더 이상은 투쟁을 진전시킬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
기 전까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이러한 사회적 동요에 대한 관점은 또한 미
국에도 스며들었다. 그 결과 2007년과 2010년 노동절에 라틴계 이주민들이 집결하기도 했
다.
사회 운동 이론가들은, 노동력이 너무나 원자화되고 임시화되고 분산되어 더 이상
“조직화
된 노동“은 단일한 세력이 될 수 없다고 거듭 되풀이하고 있다.
IN은 “조직화된 노동“에 조금도 집작하지 않는다. 총 노동 계급에 몰두하려는 것이다. 노동
계급에서 새로운 사회적 운동으로 강조점을 변경시키려한 역사적인 배경을 절대 간과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한 패턴은 브라질(1978-83), 폴란드(1980-81) 그리고 한국
(1987-1990)에서 처럼 반복해서 등장해왔다. 일종의 “구식” 산업화의 정점에 있을 때(오늘
날 “대량 생산 노동자“라 일컫는 이들도 있다) 불법 파업들이 터져 나왔고,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다가, 자본가들의 뒤 이은 역공으로 너무나도 익숙한 아웃소싱, 임시고용, 그리고 탈
산업화의 지겨운 과정을 거쳐 그 열기가 사그라 들었다.
1983년 브라질에서는 CUT(주요
노동조합 연맹, 룰라의 금속연맹을 포함한)는 그러한 파업의 명성을 등에 업었다. 2000년까
지, CUT는 거의 사회복지 업무로 전환되어, 해고 노동자들에게 축소된 공장 입구 주변에서
과일가판대를 시작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무토지 운동(os sim-terra 포르투갈어로 불
려 지기 때문)이, 일단 약간의 토지를 얻고 나면 조금씩 그 수가 줄어드는 반복적 농민 문
제와 함께 거친 억압에 직면하여 중요한 성공을 거두어 왔다. 남한에서는 1980년대 후반
파업의 물결이 NGO의 확산, “평화 활동가” 그리고 “시민 사회“에 대한 수다로 대체되었다.
새로운 사회 운동은 1980년대 초반 등장해 세계 노동 계급에 대한 자본의 이러한 거센 역
공으로 생겨난 공백을 메웠다. 딱 한 가지 전형적인 예를 들자면, 이탈리아의 삐아뜨(FIAT)
는 당시 대형 토리노 공장을, 훨씬 더 적은 수의 노동자들로 같거나 더 많은 수의 자동차를
생산하며 작은 마을로 퍼져있는 소공장 생산체계로 변환하는 과정에 수십억 달러를 썼다.
1970년대 후반 투쟁의 물결은 그렇게 중단되었다. 그것은 거의 한 시대의 한 방법론이 될
수도 있다. 자본은 계속 자본으로 존재하기 위해 사회를 파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최근 몇 년간, 라틴아메리카에 덧붙여, 제3
세계 주변에서 인상적인 파업의 파고가 존재해
왔다(방글라데시와 이집트의 섬유 파업, 터키의 TEKEL-담배회사– 파업, 베트남 총파업, 인
도 구르가온의 투쟁, 1988년 수하르토를 전복시킬 당시 인도네시아 노동 계급의 활약, 사유
화나 연금 약탈을 포함 중국에서 1년간 일어난 7만 건의 “사건들“). 아웃소싱, 임시직화와
임시노동은 분명 고전적인 그리고 비교적 안정적인 1980년 이전의 블루칼라 프롤레타리아
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해왔다. 그들의 조건이 어떠하든, 중국 인도 브라질 혹은 남아시아
운동 속에서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최근 몇 십 년 동안 자본 축적에 이용되어왔던 구 소비
에트 블럭의 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이미 앞으로 나타날 프롤레타리아의 다음 공격의
일부이다.
IX. 요약 그리고 강령
단결을 모색하는 반대세력의 밀물에 직면해, 즉각적인 서툰 대결과 억압이 밀물의 파고를
더 끌어올리게 될까 두려운 가운데, 최근의 자본은 1920년 공장 점거에 직면한 이탈리아
산업주의자들의 전략과 전술을
재발견해왔다:
팔짱 끼고 기다리기. 2002년 아르헨티나 혹
은 2006년 와하카에서처럼 혹은 – 좀 더 작은 규모로는– 2009년 남한 쌍용자동차 공장
77일 점거 당시처럼, 반란에 대한 자본가들과 국가의 기본적인 메세지는 다음과 같다 : “너
희들이 공장, 마을, 도시를 접수해? 좋다. 이제 너희들 스스로 그것을 운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1919년 1월 영국 수상 로이드 조지와 영국노동조합협의회(TUC) 대표들 사이에
벌어진 유사한 회의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 TUC는 어떤 것도 접수할 의도가 전혀 없
었다). 반란의 움직임이 그러한 도전에 맞설 만큼 상승하지 못 할 경우, 냉정을 잃게 되고,
인내는 고갈되고, 직업적 좌파들은 마이크를 붙잡고, 사람들은 얼마나 민주적이든 상관없이
끝없는 회의에 피곤해지고(이러한 모든 흐름은 정부가 거대한 반격의 순간을 기다리는 동안
정치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억압에 의해 촉진된다) 그리고 운동은 괴멸된다.
이러한 최근의 사례들 속에서 (1920년 이탈리아와는 다른), 거대한 유혈사태는 반란이 진압
된 후 필수적이지 않았다( 선택적으로 치명적인 억압이 뒤 따르지 않았다는 의미는 결코 아
니지만).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강령적으로 무장된” 전투부대 없이, 투쟁은 결코 저절로 결
전을 향한 준비에 집중될 수 없으리라는 점, “다른 사회 체제“(굳이 대중적으로 표현하자면)
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 없이, 그 투쟁은 종종 불발된 채 서서히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이다. (
이것이 초기 상승 국면 즉 투쟁이 점점 거세질 것 같은 초기에 나타나는 “자발적 행위“의
종종 중요하고 건설적인 역할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엘리트 통치– 부르주와에 의해서든 혹은 그칠 줄 모르는 회의에 누구보다 오래 남아 새벽
2시에 그들의 안건을 놓고 투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직업적 좌파에 의해서든–에 대한 광범
위한 대안이 부재하다는 점은 “반동적“이든 “진보적“이든 항상 계급 사회의 기초가 되어 왔
다. 수동성은, 자발적이든 유도되었든, 항상 “관료정치“의 시녀이다. 그리고 우리의 관점에
서, 그러한 패배에 대한 최상의 해결 방법은 다른 “사회 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강령적 관
점에 대한 가능한 한 가장 광범위한 선전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을 노동 계급의 권력을
향해 가는 길에 실질적으로 시험해 보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모든 계급을 해체하는 과정
에서 노동 계급이 지배적 계급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
1. 60년대/70년대 (브라질, 폴란드, 한국 같은 곳에서 확산된) 저항이 있은 후
자본은 프롤레타리아가 집중된 중심부를 해체하려는 반의식적 반대전술을 구사
하느라 부산해왔다. 그 과정에서 가능한 많은 새로운 원자화되고 임시화되고
분산된 임노동 인구를 양산해왔으며 그 결과 1인 수입 가정, 장기적으로 안정
적인 직업, 복지 수당, 안정적 주택, 다음 세대를 위한 ( 얼마나 속물적이든 상
관없이 ) 교육과 “포부“는 심지어 기억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2. 이는 자본의 금융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정상적인‘ 자본 축
적이 아니다. 이는 물질에 기반을 둔 사회적 재생산을 파괴하고 있고 이 파괴
과정 속에는 노동력과 생산 수단 (사회기반시설과 자연을 포함한) 모두가 그
대상이다.
3. 이러한 발전은, (막스 관점의) 가치가 이미 60년대/70년대의 위기 속에서
수명을 다 했으며 세계적으로 적당한 속도의 이익을 재건하기 위해 거대한 역
행을
수행해야만
(debt-for-equity)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본의
역행은
출자
개편과 합병 및 획득에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생산과 재생
산에서 일어나고 있다.
4. 강령적 문제는 분명 과거 대량 생산 공장들을 예전과 같이 재구축하자는 내
용은 될 수 없다. 아무도 조립 라인을 그리워하지 않으며,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생산과 소비는 이미 “사회적” 공간을 충분히 파괴해 왔다. 50년대부터 70년
대 파업운동의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자주 지적해 왔듯이, 대부분의 좌
파들(나 자신을 포함해)은 공장 노동자를 노동자로 이론화한 것이지, 공장 노
동이 그룬트리세(Grundrisse) 같은 “소비에서 만큼이나 생산에 있어서도 모든
방면의 활동,” 즉 공산주의에 부응한다는 논리를 깨기 위한 노력을 할 때 이들
이 선도적인 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량 생
산이 우리가 이제껏 보아온 어떤 것보다도 계급의식과 계급행동에 훨씬 더 근
접한 무언가를 생산하는 듯 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또한 2차 세
계 대전 후기의 과거 “사회적 계약“에 대한 파기가 또한 보수주의를 깼다는 사
실을 인식할 수 있다. 당시의 보수주의는 하나의 직업, 동일한 헌신 등과 연계
되어 구축되었고, 하나의 공장, 하나의 산업 속에서 틀림없이 연대감은 촉진된
만큼 억제됐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같은 몇몇 국가들에서,
젊은이들의 노동 계급 운동을 유발했다. 이들은 그들의 부모님들이 누렸던 안
정성을 결코 가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이러한 불안정한 유동
성을 이용해 전 도시를 넘나드는 “나르는 피켓(flying picket)” 운동을 구축했
고, 이 운동은 전 도시에서 하나의 대공장 혹은 산업을 반대하는 데 집중되었
다.
5. 한 “헤겔주의 막시스트“의
조망,
즉 현실적인 시각에 따르면, 세계 노동
계급의 현실성은 가치 생산을 뛰어 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세계 노동 계급
의 현재의 잠재력이다. 그것이 60년대/70년대 이후로, 그리고 사실상 20세기
초 이래로 자본이 대항해 싸워왔던 현실성이다. 그것이 오늘날 투쟁의 참된 틀
을 결정한다. 스티글리츠(Stiglitz)- 삭스(Sachs) 등 케인주의의 영감을 받고,
새로운 사회 운동 위에 기반을 둔 이들은, 1914-1945년의 과도기적 위기로부
터 나온 자본주의를 재조직했던 케인즈의 정확한 현대판이다.
6. 우리의 임무는 최근의 혼돈 너머에 놓여 있는 그 긍정적이 힘이 지닌 모든
함의들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투쟁 속에 있는 미세한 길
들 어디에서 그 잠재력이 부상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파리 지역의 교외 젊은이들은 일상적으로 기차에 무료 탑승
해 도시 경계를 넘나든다. 그리고 요금을 걷어야 하는 역무원과 물리적으로 충
돌한다. 대중교통 무료 이용 캠페인은 그러한 요소를 결합할 수 있을 것이며,
역무원들을 중요한 “경찰” 역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일상적인 많은 요
금수납원들에게도 똑 같은 사례를 들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례는 그들에
게 어디에서 프롤레타리아가 교외 프롤레타리아에게 저항하게 되어 있는지를
알려주는 단 한 가지 예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따르는 것은 이제 핵심적인 국가에서 일어날, 그리고 바라건 데 신속히 전 세계
로 번질 성공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 첫 백 일 “을 위한 강령이다. 우리는 막스의 관
점에 따른 “가치” 생산이 빠르게 해체될 잠재성을 여기에 그리고자 한다. 물론 이는 단지
시험적이며 토론과 비평에 열려있다 :
1. 제 3 세계를 상향 평등화하기 위한 기술 프로그램 이행
2. 세계 소득을 위한 최소한의 발판 창출
3. 석유– 자동차– 제철 복합 해체 후 대중 운송수단과 기차로의 변환
4. 군대, 경찰, 국가 관료정치, 기업 관료주의, 감옥, FIRE (금융–보험–부동산),
안전 수비대, 안부(국가 안보를 명목으로 하는 각종 첩보 집단), 회계원과
요급수납원 등 과도하게 팽창된 집단들에 대한 폐지
5. 4번을 통해 자유로워진 거대한 대중 노동력를 이용한 노동시간 급감
6. 대체 에너지를 둘러싼 프로그램 철폐: (장기적으로, 가능하다면) 핵융합 발
전, 태양, 바람 등 포함
7. “더 많으나 더 적은” 원리를 가능한 많은 것에 적용 (예 : 위성 전화가 제
3 세계의 육로를 이용한 기술을 대신하고, 싼 CD가 비싼 스테레오 시스템
을 대체한다 등등)
8.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식량 자원을 사용하고 제 3 세계의 농업을 개발하는
데 목표를 둔 세계 협동농업 프로그램
9. 산업적 농업적 생산의 통합과 대도시 인구 집중 해체. 이것은 교외와 시골
을 없애고 도시를 급격하게 변형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에너지 소
비에 대해 갖는 의미는 매우 두드러진다.
10. 자동화될 수 있는 모든 힘든 노동의 자동화
11. 연합 생산자들이 작성한 국제적이고 지역적인 계획을 알 수 있도록, 컴퓨
터와 교육에 대한 접근권의 일반화
12. 건강과 치아 무료 관리
13. 교육의 생산 및 재생산과의 통합
14. 근래 들어 비생산적인 부문과 연계된 R&D를 생산적인 사용이 되도록 전
환
15. 크게 증가한 노동 생산성은 가능한 빠르게 가능한 많은 기초 상품을 무료
화할 것이다. 이를 통해, 수금과 회계를 맡고 있는 노동자들을 자유롭
게 할 것
16. 노동시간의 국제적인 단축
17. 집중화 되어야 할 모든 것들(예를 들면 세계적 천연자원의 사용)의 집중화
와 탈집중화 되어야 할 모든 것들(예를 들면 일반적인 틀 내에서의 노동
과정에 대한 통제)의 탈집중화
18. 대기를 다루는 방법, 가장 중요하게는 3번과 6번을 통해 화석 연료 사용으
로부터 점진적으로 벗어나기
다시 한 번, 지금 단계에서, 그러한 강령적인 문제는 단지 제언적일 뿐이며 논쟁을 위해 광
범위하게 열려 있다. 또한 “조직의 형태“가 아닌 가치를 넘어선 세계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
고 있다. 그 속에서 “인간의 능력은 결과적으로 배가” 되기 때문이다.